서점에서 유료로 판매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제본
산뜻한 표지디자인
읽기 쉬운 폰트와 가독성
수준높은 에디터들이 신앙의 뜻을 모아 기꺼이 나섰을까…
무심코 펼친 페이지에서 보이는 솔로몬의 훈계,
오래전, 어느 신앙의 선배가,
한달 시간을 내어 하루 한장씩 읽으면 딱 들어맞는다는
잠언 편이 고스란히 실려있다
신앙인이 아닌 사람이 읽어도 구구절절 가슴에 와서 박히는 지혜의 언어.
가난하고 분투를 일삼았던 시절
나는 잠언에 얼마나 많이 의지하였던가
나에게 사냥꾼의 그물에서 벗어나는 법을 알려주시려고
그 분께서 친히 선사하신 삶의 고통.
그 속에서 나는 얼마나 자주 솔로몬의 위로를 찾았던가.
십수년이 지나, 말씀에서 멀어진 내가 더듬어보는 기억은
어떠한 침묵의 언어였을지도….
아, 그렇지
그 말씀이었지…
‘온유한 입술에 악한 마음은 낮은 은을 입힌 토기니라….’
가정을 이루고, 삶이 좀 풍요해졌다고 해서 찾아온 자만과 위선의 처세술.
나는 얼마나 많은 발림말로, 지식을 감싸고 사실을 포장하였던가….
말을 잘하고 입술을 잘 놀리면 무조건 상승하던 지위와 자존감.
나는 그것에 얼마나 중독되어 있었던가….
‘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
언변과 정치를 잘 해서 얻은 돈과 명예,
점점 나이가 들고 말로만 일삼은 복화술의 폭력
그 권력의 쾌락은 왜 항상 혀끝이 씁쓸하였던가.
그러한 나를 위해 예비된 듯한 철칙.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
최근 어느 지인이 나에게 전해준 말
사람의 귀가 두개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는
한번 말하고 나면 적어도 두번은 들으라는 소리이지……
문득 상대방에게 내뱉고 싶은 말,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간신히 집어 삼킨 말,
귀찮았던 것인지 아니면 마음이 허락하였는지 잘 모를 그러한 머뭇거림
오히려 성급한 상황에서 잠시 멈추어 서면 보이게 되는 상대방의 언어
내가 점점 나의 말을 줄이고 귀를 열고나니
주변의 목소리와 닫혀있던 마음들이 천천히 열리고 나에게 다가온다
어떤 날은
완전히 나의 입술과 자만을 내려놓고,
상대방에게 해답을 내려주겠다는 의지와
문제를 해결해주겠다는 신념도 완전히 내려놓고
그저 가만히 귀를 열고 듣기만 한다.
그러면 참으로 이상하게도
온갖 문제가,
공기 중에서 빙빙 떠돌다가
나의 미소 한번
공감한다는 말없는 눈빛 한번에
저절로 그 자리에서 소멸하고는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솔로몬의 지혜에 경탄하고는 한다
당장 화살을 쓰고 싶은가
어디론가 멋지게 날려 상대방에게 명중시키고 싶은가?
아서라.
화살통에서 손을 잠시 떼고
빗발치는 공격을 조심조심 방어하고 고요하게 몸을 웅크려라
난리 법석 화살들이 하늘에서 모두 사라지고
구름이 가만가만 지나가면
당신의 아직 쓰지 않은 화살이
고스란히 화살통에 보존되어 있으리라는 것.
그러면, 이미 화살을 다 써버린 적들이
당신의 가지런한 화살들을 보고 겁을 먹을 수도 있다.
말이란 그런 것이다
밖으로 함부로 쏘아지지 않고
내 안에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을 때 힘을 발휘하는 것.
표지디자인 마저도 아름다운
이번 묵상집은 정말 행운처럼 나에게 굴러들어오지 않았던가….